위상공간 $X$의 열린 덮개 $U, V$를 생각하자. 위상공간들의 범주 $\mathbf{Top}$에서 다음 푸시아웃pushout 도식의 극한은 $X$이다.
자이페르트-판 캄펀 정리는, $U, V$가 경로 연결path connected이고 $x_0 \in U \cap V$일 때, 위 극한이 함자 $\pi_1(-, x_0): \mathbf{Top} \to \mathbf{Grp}$에 대해 보존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푸시아웃의 극한은 왼쪽 도식의 쌍대 극한colimit이다. 만약 $I$에 대응되는 대상이 초기 대상initial object이라면, 사상 $I \to J, J \to K$는 유일하게 결정되므로 사실상 왼쪽 도식의 쌍대 극한은 오른쪽 도식의 쌍대 극한과 같으며, 이는 범주론적 합에 해당한다.
$\mathbf{Grp}$의 초기 대상은 자명군trivial group이며, 범주론적 합은 자유곱이다. 이에 따라 $U \cap V$가 단순 연결 공간일 때, $\pi_1(X)$는 $\pi_1(U)$와 $\pi_1(V)$의 자유곱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학부 위상에서 곱 위상product topology과 상자 위상box topology을 다루는 부분은 많은 학생에게 난관으로 다가오는 대목이다. 겉보기에는 상자 위상이 훨씬 직관적인데, 교재에서는 상자 위상보다 곱 위상이 다루기에 자연스러운 개념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정의. 위상공간의 모임 $\lbrace X_i \rbrace _{i \in I}$에 대해, 상자 위상공간 $\prod X_i$는 다음의 기저로 생성되는 위상공간이다.
\[\left\{ \prod U_i : U_i \text{ is open in } X_i \right\}\]
정의. 위상공간의 모임 $\lbrace X_i \rbrace _{i \in I}$에 대해, 곱 위상공간 $\prod X_i$는 다음의 기저로 생성되는 위상공간이다.
\[\left\{ \prod U_i : U_i \text{ is open in } X_i,\; U_i \neq X_i \text{ for only finitely many } i\right\}\]
일례로 $\mathbb{R}^\omega$에서 $(1, 1, 1, \dots)$의 근방은 각각 다음과 같다.
왜 곱 위상은 상자 위상보다 자연스러운 위상으로 간주될까? 그 이유는 범주론에서 대상의 곱을 정의하는 방법과 관련이 있다.
정의. $X, Y$가 범주 $\mathcal{A}$의 대상이라고 하자. $P \in \mathcal{A}$와 사상 $\pi_X : P \to X$, $\pi_Y : P \to Y$에 대해, 다음 조건이 만족될 때 $P$를 $X, Y$의 곱product이라고 하며, $P = X \times Y$와 같이 적는다.
- 임의의 $A \in \mathcal{A}$와 $f: A \to X$, $g: A \to Y$에 대해 다음 도식이 가환이 되도록 하는 사상 $i: A \to P$가 언제나 유일하게 존재한다.
위의 정의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3개 이상, 또는 무한한 대상들의 곱으로 일반화된다. 극한limit의 개념이 익숙한 독자라면, 곱은 이산 범주의 극한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는, 곱은 주어진 대상들의 정보를 온전히 인코딩하는 가장 작은 범주로 이해할 수 있다.
집합들의 범주에서 곱은 곱집합과 같다. 특히 $\pi_X, \pi_Y$는 각각 $(x, y) \mapsto x$, $(x, y) \mapsto y$로 주어진다.
위상공간들의 범주에서 곱은 상자 위상이 아닌 곱 위상이다. 이는 다음의 정리로 보증된다.
정리. 사영함수 $\pi_k : \prod_{i \in I}X_i \to X_k$가 각 $k \in I$에 대해 연속이 되도록 하는 가장 작은 $\prod_{i \in I}X_i$의 위상은 곱 위상이다.
상자 위상도 각 사영함수가 연속이라는 특징을 가지지만, 상자 위상은 곱 위상보다 큰 토폴로지이다. 따라서 상자 위상은 범주론적 곱이 아니다.
상자 위상이 곱이 아님을 보이는 반례를 살펴보자. $\mathbb{R}^\omega$에 상자 위상을 부여하자. 만약 상자 위상이 범주론적 곱이라면, 임의의 연속인 $f_k: \mathbb{R} \to \mathbb{R}$에 대해 $\pi_k \circ i = f_k$가 되도록 하는 연속함수 $i : \mathbb{R} \to \mathbb{R}^\omega$가 존재해야 한다. $f_k: x \mapsto kx$라면 $i$는 $x \mapsto (x, 2x, 3x, \dots)$이다. 상자 위상에서는 $U = (0, 1)^\omega$가 열린 집합이므로, $i$가 연속이면 $i^{-1}(U)$가 열린집합이다. 그런데 $i^{-1}(U) = \lbrace 0 \rbrace $이므로, 상자 위상은 곱의 성질을 만족하지 않는다.
상자 위상과 곱 위상의 차이는 전체 공간이 아닌 인덱스가 유한한지의 여부에 있다. 이와 유사한 차이를 대수학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정의. 벡터 공간들의 모임 $\lbrace V_i \rbrace _{i \in I}$에 대해, 직곱direct product $\prod V_i$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prod V_i = \left\{ (v_i)_{i \in I} : v_i \in V_i \right\}\]
정의. 벡터 공간들의 모임 $\lbrace V_i \rbrace _{i \in I}$에 대해, 직합direct sum $\bigoplus V_i$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bigoplus V_i = \left\{ (v_i)_{i \in I} : v_i \in V_i,\; v_i \neq 0 \text{ for only finitely many }i \right\}\]
벡터의 연산은 항별term-wise로 정의한다. 또한 벡터 공간이 아닌 군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직곱과 직합을 정의할 수 있다.
직곱과 상자 위상, 직합과 곱 위상의 정의가 비슷하다는 점으로부터 직합이 범주론적 곱에 대응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대수의 경우 범주론적 곱에 대응되는 것은 직곱이다. 직합은 범주론적 곱의 조건을 일반적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일례로 다음의 경우를 보자. 일차원 실수 공간 $\mathbb{R}$의 직합 $\mathbb{R}^\omega$를 고려하자. 만약 직합이 범주론적 곱이라면, 임의의 선형인 $f_k: \mathbb{R} \to \mathbb{R}$에 대해 $\pi_k \circ i = f_k$가 되도록 하는 연속함수 $i : \mathbb{R} \to \mathbb{R}^\omega$가 존재해야 한다. $f_k: x \mapsto x$라면 $i$는 $x \mapsto (x, x, x, \dots)$이다. 그런데 $i(1) = (1, 1, 1, \dots) \notin \mathbb{R}^\omega$이므로, 직합은 곱의 성질을 만족하지 않는다.
대신 직합은 범주론적 합sum에 대응된다. 범주론적 합은 곱의 켤레dual이기 때문에 쌍곱coproduct이라고도 한다.
정의. $X, Y$가 범주 $\mathcal{A}$의 대상이라고 하자. $S \in \mathcal{A}$와 사상 $\sigma_X : X \to S$, $\sigma_Y : Y \to S$에 대해, 다음 조건이 만족될 때 $S$를 $X, Y$의 합sum이라고 하며, $S = X + Y$와 같이 적는다.
- 임의의 $A \in \mathcal{A}$와 $f: X \to A$, $g: Y \to X$에 대해 다음 도식이 가환이 되도록 하는 사상 $i: S \to A$가 언제나 유일하게 존재한다.
앞서 들었던 예시를 다시 보자. 직합 $\bigoplus_\omega \mathbb{R}$를 고려하자. $\sigma_k: \mathbb{R} \to \bigoplus_\omega \mathbb{R}$은 다음과 같이 주어진다.
\[x \mapsto (0, \dots, 0, x, 0, \dots) \quad \text{($x$ is at the $k$th index)}\]$A = \mathbb{R}$이라고 하고, 항등사상 $f_k : \mathbb{R} \to \mathbb{R}$을 고려하자. $\bigoplus_\omega \mathbb{R}$가 범주론적 합이라면 $i \circ \sigma_k = f_k$가 되도록 하는 연속함수 $i : \bigoplus_\omega \mathbb{R} \to \mathbb{R}$가 존재해야 한다. 실제로 이는 다음과 같이 존재한다.
\[i: (x_i)_{i \in \omega} \mapsto \sum_{i \in \omega} x_i\]$\bigoplus_\omega \mathbb{R}$의 원소는 오직 유한한 비자명 항을 가지므로 $i$는 잘 정의됨에 주목하라. 반면, 이 예시는 직곱 $\mathbb{R}^\omega$가 범주론적 합이 아님을 보여준다. 직곱의 경우 $i$가 잘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i$에 $(1, 1, 1, \dots)$를 대입해 보면 알 수 있다.
군의 경우 범주론적 곱과 범주론적 합에 대응되는 연산은 일반적인 군의 범주를 따지냐, 아벨군의 범주를 따지냐에 따라 조금 다르다. 이 부분은 간단한 노트 정도로 남겨둔다.
대수적 정의 | 범주론적 정의 | |
---|---|---|
자유곱 | 형식적 단어의 집합 + 병치 연산 | $\mathbf{Grp}$의 합 |
직합 | 유한한 비자명 항을 가지는 튜플의 집합 + 항별 연산 | $\mathbf{Ab}$의 합 |
직곱 | 튜플의 집합 + 항별 연산 | $\mathbf{Grp}$의 곱 |
이름 | 함의 | 공리 |
---|---|---|
K | 가능세계에 대한 크립키 모델 | $\Box(p \to q) \to (\Box p \to \Box q)$ |
T | 반사성 | K + $\Box p \to p$ |
S4 | 반사성 + 추이성 | T + $\Box p \to \Box \Box p$ |
S4.2 | 반사성 + 추이성 + R-수렴성 | S4 + $\Diamond \Box p \to \Box \Diamond p$ |
S4.3 | 반사성 + 추이성 + R-선형성 | S4 + $(\Diamond p \land \Diamond q) \to$ $(\Diamond (p \land \Diamond q) \lor \Diamond(\Diamond p \land q))$ |
S5 | 반사성 + 추이성 + 대칭성 | S4 + $(p \to \Box \Diamond p)$ |
표의 밑으로 갈수록 논리는 엄격히 강해진다.
정리. S4에서 양상 연산자의 나열은 6개의 조합 중 하나와 동등하며, 각 조합의 함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정리. S5에서 양상 연산자의 나열은 $\Box$ 또는 $\Diamond$와 동등하다. 나아가 모든 논리식은 평평한flat 논리식 — 즉, 양상 연산자 안에 양상 연산자가 있는 경우가 없는 논리식과 동치이다.
정리. K는 완전하다.
증명.
린덴바움 보조정리. 임의의 무모순적인 이론은 극대적으로 무모순적인maximally consistent 이론으로 확장될 수 있다.
완전성 진술은 “무모순적인 이론은 만족 가능하다”와 동치이며, 여기에 린덴바움 보조정리를 적용하면 이는 “극대적으로 무모순적인 이론은 만족 가능하다”와 동치이다.
$u, v$가 극대적으로 무모순적인 이론이라고 하자. $\Box p \in u \implies p \in v$일 때 $u \lhd v$라고 적자. 다음을 어렵지 않게 보일 수 있다.
이로부터 극대적으로 무모순적인 이론 $u$에 대해, 표준적canonical 크립키 모델 $\mathfrak{K} = (U, \prec, V)$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mathfrak{K}$가 $u$를 만족함을 어렵지 않게 보일 수 있다. ■
Notation.
- $-$는 매개변수의 자릿값이다. $-$가 두 개 쓰였으면 매개변수가 두 개라는 뜻이다. 어느 매개변수가 어느 자리에 해당하는지는 맥락으로 파악한다.
- $\bullet$은 $-$를 우선하는 매개변수이다. 따라서 $\hom(-, \bullet)$은 $A$를 함자 $\hom(-, A)$에 대응시키는 함자이다.
- 함자 $F, G$에 대해 $[F, G]$를 $F$에서 $G$로 가는 자연적 변환natural transformation들의 모임으로 정의한다.
- 모든 범주는 국소적으로 작은locally small 범주라고 가정한다.
요네다 보조정리Yoneda lemma는 표현가능함자representable가 다른 함자를 바라볼 때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정리이다.
예를 들어 $A \in \mathcal{A}$에 대해, 표현가능함자 $\hom_{\mathcal{A}}(-, A)$를 생각하자. 이 함자가 속하는 범주는 $[\mathcal{A}^{\mathrm{op}}, \mathbf{Set}]$이다. 따라서 $\hom_{\mathcal{A}}(-, A)$가 함자 $F : \mathcal{A}^{\mathrm{op}} \to \mathbf{Set}$를 바라볼 때 보이는 것은 다음 자연적 변환들의 집합이다.
\[[\hom_{\mathcal{A}}(-, A), F]\]위 집합은 $A \in \mathcal{A}$와 $F \in [\mathcal{A}^{\mathrm{op}}, \mathbf{Set}]$으로부터 정의된 집합이다. 그런데 $A, F$로부터 집합을 정의할 수 있는 또다른 자연스러운 방식이 있다. 단순히 $F$에 $A$를 취하는 것이다.
\[F(A)\]요네다 보조정리에 따르면 두 집합은 동형isomorphic이다. 게다가 그냥 동형인 것이 아니라, $A \in \mathcal{A}$와 $F \in [\mathcal{A}^{\mathrm{op}}, \mathbf{Set}]$에서 자연스럽게 동형naturally isomorphic이다. 요컨대 다음 두 함자가 $[\mathcal{A}^{\mathrm{op}} \times [\mathcal{A}^{\mathrm{op}}, \mathbf{Set}], \mathbf{Set}]$에서 동형이다.
\[\begin{aligned} \text{(i)} \quad \mathcal{A}^{\mathrm{op}} \times [\mathcal{A}^{\mathrm{op}}, \mathbf{Set}] &\xrightarrow{\hspace{0.15cm} \hom_{\mathcal{A}}(-, \cdot)^{\mathrm{op}} \times 1 \hspace{0.15cm}} [\mathcal{A}^{\mathrm{op}}, \mathbf{Set}]^{\mathrm{op}} \times [\mathcal{A}^{\mathrm{op}}, \mathbf{Set}] \\ &\xrightarrow{\hom_{[\mathcal{A}^{\mathrm{op}}, \mathbf{Set}]}(-, -)} \mathbf{Set} \\\\ \text{(ii)} \quad \mathcal{A}^{\mathrm{op}} \times [\mathcal{A}^{\mathrm{op}}, \mathbf{Set}] &\xrightarrow{-(-)} \mathbf{Set} \end{aligned}\]Remark. $\hom_{\mathcal{A}}(-, \cdot)^{\mathrm{op}}$에 붙은 $\mathrm{op}$는 함자의 정의역을 $\mathcal{A}^\mathrm{op}$로 맞춰주기 위함이고, 실질적으로는 $\hom_{\mathcal{A}}(-, \cdot)$와 같다.
증명. 증명의 개요만 적자면, $\hat{(\;\;)} : [\hom_\mathcal{A}(-, A), F] \to F(A)$와 $\tilde{(\;\;)}: F(A) \to [\hom_\mathcal{A}(-, A), F]$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hat{\alpha} = \alpha_A(1_A), \quad \tilde{x} = \theta\]여기서 $\theta$는 $f : A’ \to A$를 다음과 같이 사상하는 자연적 변환이다.
\[\theta_{A'}: f \mapsto F(f^{\mathrm{op}})(x)\]$\theta$를 위와 같이 정의하는 이유는 다음 가환 도식을 만족하게끔 만들기 위함이다. ($(-)$에 $1_A$를 대입해 확인해 보라.)
이제 임의의 $A \in \mathcal{A}, F : \mathcal{A}^\mathrm{op} \to \mathbf{Set}$에 대해 다음이 성립함을 보여아 한다.
이것은 $[\hom_\mathcal{A}(-, A), F] \cong F(A)$임을 보인다. 여기에 더해, 해당 동형이 자연적임을 보여아 한다. 자아아알 생각해 보면 이것은 임의의 $A, A’ \in \mathcal{A}$와 $F, G \in [\mathcal{A}^{\mathrm{op}}, \mathbf{Set}]$와 $f: A’ \to A$와 $\alpha: F \Rightarrow G$에 대해 다음 도식이 가환임을 보이는 것과 같다.
원소 단위로 적으면,
위가 성립함은 $\theta$의 자연성으로부터 따라 나온다. ■
요네다 보조정리가 함의하는 결과 중 다음은 아주 중요하다. 필자는 이를 그냥 요네다 따름정리라고 부른다.
요네다 따름정리. $X, Y \in \mathcal{A}$라고 하자.
- $[\hom(-, X), \hom(-, Y)] \cong \hom(X, Y)$
- $X \cong Y \iff \hom(-, X) \cong \hom(-, Y)$
증명. $F = \hom(-, Y)$로 둔다. ■
요컨대 범주론에서 대상은, 그것이 받는 사상들의 집합과 다름없다. 일례로 정수 순서 범주에서 $0$은 초기 대상으로 정의할 수 있고, 더 일반적으로 $n$은 받는 사상들의 수가 $n$개인 대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요네다 따름정리는 이처럼 대상을 그것이 다른 대상과 맺는 사상들로서 정의하는 접근이 모든(엄밀히는 국소적으로 작은) 범주에서 유효함을 보장한다. 필자는 이 접근을 관계론적 존재론이라고 부른다.
이 글은 David Kaplan, Quantifying In (1968)을 정리한 것이다.
다음 두 문장을 보자.
(1)과 (2)에서 모두 ‘둘’이 나타나지만, 매우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1)에서 ‘둘’이 나타나는 방식을 평범한 발생vulgar occurence이라고 하고, (2)에서 ‘둘’이 나타나는 방식을 우연적 발생accidental occurence이라고 하자.
단어가 평범하게 발생할 경우 해당 단어는 지시하며, 동일성에 대한 라이프니츠 원리를 만족한다(예컨데 ‘둘’을 ‘화성의 위성 개수’로 대치해도 문장의 진릿값이 보존된다). 단어가 우연적으로 발생할 경우 해당 단어는 지시하지 않으며, 라이프니츠 원리를 만족하지 않는다.
이제 다음의 문장들을 보자.
(3), (4), (5)에서 ‘둘’은 지시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둘’을 ‘화성의 위성 개수’로 바꾸면 문장의 진릿값이 보존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모호한 발생intermediate occurence이라고 하자.
언어철학에서 모호한 발생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된다. 첫째는 모호한 발생을 우연적 발생에 동화하는 것이고, 둘째는 모호한 발생을 평범한 발생에 동화하는 것이다.
콰인은 모호한 발생을 우연적 발생에 동화한다. 그는 (3)에서 따옴표로 감싸진 문장은 하나의 단어이고, (5)에서 둘이 하나보다 크다고 믿었다 는 원자 술어라고 주장한다. 특히 (3), (4), (5)에서 ‘둘’이 나타나는 문맥을 불투명 문맥opaque context이라고 명명한 것은 그가 모호한 발생과 우연적 발생의 동일시를 염두에 뒀음을 시사한다.
콰인은 (3), (4), (5)와, 다음의 (6), (7), (8)을 대조한다.
(3), (4), (5)와 달리 (6), (7), (8)의 문형에서 ‘둘’은 평범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콰인이라면 ‘하나’는 여전히 우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6), (7), (8)은 고전 논리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고전 논리는 ‘There exists $x$ such that…‘이라는 문형은 허용하지만 ‘$n$ is such that…‘이라는 표현은 결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6), (7), (8)의 의미론을 정당화하는 것이 과제로 남는다.
우선 (6)부터 보자. 최소한의 논리적 분석으로도 (6)이 적형식well-formed formula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주어의 둘 은 이름의 사용use에 해당하지만, 뒤에 ‘하나보다 크다’를 적기 는 이름의 언급mention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6)은 의미론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7)의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적 본질주의Aristotelian essentialism로써 설명할 수 있다. 이 설명은 임의의 대상에 대해, 그에게 본질적인 속성과 우연적인 속성이 무엇인지를 규정한다. 콰인은 이같은 방식으로 (7)의 정당성을 설명한 바 있다.
(8)이 의미론적으로 정당함을 시사하는 예시는 많이 있다. 러셀의 다음 유명한 문장을 보자.
위 문장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며, 참인 듯하다. 이것은 (8)의 의미론적 정당성을 지지한다. 또한 콰인은 다음의 유명한 문장의 쌍을 거론한다.
a. 랄프는 누군가가 스파이라고 믿는다. Ralph believes that someone is a spy.
b. 누군가에 대해, 랄프는 그가 스파이라고 믿는다. Someone is such that Ralph believes they are a spy.
a에서는 존재 양화가 믿음 문맥 안에서, b에서는 밖에서 이루어진다. 한편 콰인은 믿음 문맥 속의 단어들을 우연적 발생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그에 따르면
로부터 $\exists$-첨가를 적용하여 b를 유도할 수 없음에 유의하라. 그러나,
로부터 b를 유도하는 것은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애매한 발생에 대한 콰인의 입장은 두 가지이다. 첫째, 애매한 발생은 우연적 발생과 동일시할 수 있다. 둘째, 불투명 문맥 안과 밖에서 단어가 등장하는 경우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에 대해such that’ 구문을 사용할 수 있다. 콰인은 이 구문을 관계론적 의미에서의 믿음relational sense of belief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관계론적 의미에서의 양상, 주장, 생각 등의 구문을 도입할 수 있겠으나, 각 구문의 도입은 별도의 정당화를 요구한다.
프레게는 모호한 발생을 평범한 발생에 동화한다. 프레게는 모호한 발생에서 라이프니츠 원리가 어긋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해당 문맥에서 단어들의 실제 지시체를 우리가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혼동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지시 표현이 언제나 동일한 대상을 지시한다는 믿음이다. 이로부터 도출되는 둘째 믿음은, 대부분의 맥락에서 같은 대상을 지시하는 지시 표현은 언제나 같은 대상을 지시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지시 표현이 언제나 같은 대상을 지시한다는 믿음에 반하는 사례는 많다. 일례로 다음과 같이 중의적이거나 모호한ambiguous 단어의 사례가 있다.
(11)에 대한 자연스러운 분석은, 전자의 ‘F.D.R.’은 정치인을 지칭하는 한편 후자의 ‘F.D.R.’은 텔레비전 방송을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 두 ‘F.D.R.’은 모두 평범한 발생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이름-지시체-일대일-대응-주의자라면 (11)이 ‘텔레비전에 딱 한 번 방영되었다’가 불투명 문맥임을 드러내며, 후자의 ‘F.D.R.’은 우연적 발생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이 입장을 조금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11)은 올바르지 않은 문장이며 후자의 ‘F.D.R.’은 ‘‘F.D.R’이라는 이름의 텔레비전 방송’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누군가 불투명 문맥으로 이해할 문장을 누군가는 모호함의 발생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레게는 지시 표현은 보통 그 일상적인 지시체를 지시하지만, 뜻sense 따위의 중간 대상을 지시할 수도 있으며, 이같은 모호함이 철학자들을 애매한 발생의 문제로 빠뜨린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프레게는 전자를 직접 지시direct reference, 후자를 간접 지시indirect reference라고 부른다.
콰인 | 프레게 | |
---|---|---|
둘은 하나보다 크다 | 지시 문맥 | 직접 지시 |
필연적으로, 둘은 하나보다 크다 | 불투명 문맥 | 간접 지시 |
그렇다면 애매한 발생에서 표현의 지시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저자는 합성의 원리principle of compositionality가 핵심이라고 말한다. 문장을 이루는 개별 요소의 지칭체가 불분명하다면, 문장 전체의 지칭체를 먼저 확인하고, 문장의 지칭체가 어떻게 분석 가능한지를 파악함으로써 개별 요소의 지칭체를 역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방법론에 따라 프레게는 인용구 안의 표현expression들은 자기 자신을 지시한다는 입장에 도달했다. 예를 들어 $\ulcorner 1 + 2 = 3 \urcorner$에서 $\ulcorner 1 \urcorner$의 지시체는 $\ulcorner 1 \urcorner$이다. 이같은 프레게의 입장은 인용 문맥 내의 양화사 사용을 가능하게 만든다. 로마 문자의 정의역이 대상이고, 그리스 문자의 정의역이 표현이라고 하면 프레게의 이론 하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참을 표현할 수 있다.
표현에 비해 뜻sense 또는 의미meaning의 존재론적 위상은 불분명하지만, 비슷한 접근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먼저 다음의 사례로 예증되는 의미 따옴표를 도입하자.
고딕 문자의 정의역이 의미라고 하면 프레게주의는 다음과 같은 참을 표현할 수 있다.
Remark. 작은따옴표는 표현을 나타내는 반면, $\ulcorner$…$\urcorner$은 표현들의 합성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m…m은 의미를 나타내는 반면, M…M은 의미들의 합성을 의미한다. 물론 표현들의 합성도 표현이고, 의미들의 합성도 의미이기 때문에, 등식 1, 2가 성립한다. 저자가 등식 1, 2를 등식 3에 빗대어 설명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도움이 된다.
- ‘The cat is on the mat’ $=$ $\ulcorner$The cat is on the mat$\urcorner$
- mThe cat is on the matm $=$ MThe cat is on the matM
- $237 = 2 \times 10^2 + 3 \times 10 + 7$
그러나 작은따옴표와 $\ulcorner$…$\urcorner$가 완전히 같고, 그리고 m…m과 M…M이 완전히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각 경우 전자는 불투명하지만 후자는 투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은 불가능하지만 2는 가능하다. 이것은 3은 말이 안 되지만 4는 올바른 것과 같은 이치이다.
- $\exists \alpha\; \big($ ‘$\alpha$ is on the mat’ is true$\big)$
- $\exists \alpha\; \big(\ulcorner \alpha$ is on the mat$\urcorner$ is true$\big)$
- $\exists n\; (237 < 2n7)$
- $\exists n\; (237 < 2 \times 10^2 + n \times 10 + 7)$
이제 프레게주의가 (6), (7), (8)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자.
그에 앞서, (4), (5), (7), (8)에서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명료화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S가 문장일 때, 누군가가 S를 믿는다는 것, 또는 S가 필연적이라는 것은 어떻게 형식화할 수 있는가? 본 논문에서는 간단한 길을 택하여, 문장은 자기 자신을 지시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필연을 문장에 대한 단항 술어로, 믿음을 주체와 문장 사이의 이항 술어로 간주한다. 따라서 (4), (5)는 다음과 같이 적을 수 있다.
(7), (8)을 콰인식으로 형식화하기 위해, 콰인의 관계론적 믿음과 관계론적 필연을 나타낼 술어 $\mathbf{Nec}$와 $\mathbf{Bel}$를 도입하자.
여기서 볼드체 문자 $\mathbf{x}$는 $\mathbf{x}$가 지시적으로서가 아닌, 오직 자리값placeholder으로서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콰인에 따르면 $\mathbf{x}$는 불투명 문맥에 있으므로, 지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게주의는 (15)와 (16)을 다음과 같이 형식한다.
상술한 Remark로 인해 동일한 술어 $\mathbf{N}, \mathbf{B}$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19)와 (20)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 (19)와 (20)의 ‘둘’이 지시적이긴 하지만, (7)과 (8)의 ‘둘’과는 다른 대상을 지시한다. 전자는 표현을, 후자는 수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7)과 (8), 또는 (17)과 (18)로부터 가능했을 논리적 추론이 (19)와 (20)만으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17)과 다음이 주어졌을 때,
다음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19)와 (21)은 다음을 도출하는 데 그친다.
한편 다음은 올바르지 않다. $\alpha$는 수가 아니라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처치가 도입한 바 있는 지시 술어 $\Delta$를 도입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alpha$가 $c$를 지칭할 때, 그리고 오직 그럴 때만 $\Delta(\alpha, c)$라고 하자. 그러면 프레게식으로 (22), (17), 그리고 (18)은 각각 다음과 같이 적을 수 있다.
논문의 저자는 (23), (24), (25)가 원 문장의 직관적인 의미를 포착할 뿐 아니라, 콰인과 달리 $\mathbf{Bel}, \mathbf{Nec}$ 등의 추가적인 술어를 소개하고 정의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콰인은 다음의 사고실험을 제시한 바 있다. 랄프는 골목에서 갈색 모자를 쓴 수상한 인물이 벤치 밑의 서류가방을 가져가는 것을 보고는 그가 스파이일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 랄프는 그가 속한 도시의 시장을 존경하며, 그가 스파이일 리가 없다고 믿는다. 그런데 사실 수상한 사람과 시장은 동일한 인물, 올트커트 씨이다.
콰인은 이를 다음과 같이 형식화한다.
(26), (27)을 관계론적 믿음으로 표현하면,
(28)에 의해 (29), (30)은 각각 다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랄프는 다음을 믿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4)는 문제적이다. 콰인은 문제의 원인이 (32), (33)으로부터 (34)를 도출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프레게적 형식화는 콰인의 직관이 올바름을 증명한다. 자세한 과정은 생략하지만, (26), (27), (28)은 오직 다음을 도출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두 번째 역설이다. (9)가 참이라고 하자. 즉, 랄프는 스파이의 존재를 믿는다. 또한 랄프는 세상에 키가 정확히 똑같은 두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므로 (매우 합당한 믿음이다) 키가 가장 짧은 스파이가 존재하리라 믿는다. 따라서 (39)가 성립한다.
콰인식으로 ‘키가 가장 작은 스파이’를 추출exportation하면,
$\exists$-첨가에 의해,
그리고 (41)은 (10)과 내용이 같다. 따라서 (9)와 (10)이 서로를 시사하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논문의 저자는 이 문제가 너무 까다로운 나머지 한때 양상 및 믿음 문맥에서 양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으로 기울었으나, 이를 공략할 방안이 떠올랐다는 일화를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