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의 블로그 Dimen's Blog
이데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Alice in Logicland

EN

콰인, ⟪경험주의의 두 독단⟫

철학
언어철학

개요

분석·종합의 구분과 검증가능성 원리는 논리실증주의를 이루는 두 기둥이다. 하지만 콰인은 ⟪경험주의의 두 독단⟫에서 분석·종합의 구분과 검증가능성 원리는 문제적이라고 지적한다. 콰인은 분석성의 정의는 자기순환적이며, 명제는 독립적으로 검증될 수 없고 오로지 믿음의 망web of beliefs 전체가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콰인이 ⟪두 독단⟫에서 제시하는 논증은 논리실증주의를 와해할 뿐 아니라, 의미의 개념 자체가 허구적이라는 의미 회의주의와, 극단적 전체론을 시사한다. 또한 콰인의 논증에 대한 반론을 검토한다.

1. 분석·종합에 대한 콰인의 공격

콰인은 분석성을 정의하려는 기존의 시도는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 사례로 칸트와 프레게의 정의를 검토한다.

1.1. 칸트의 분석성 정의

분석성에 대한 칸트의 첫 번째 정의는 다음과 같다.

“모든 a는 b이다”는 분석적이다 $\iff$ a가 b에 개념적으로 포함된다

그러나 위 정의는 “개념적으로 포함”이라는 비유적 표현에 의존할 뿐 아니라 주어-술어 구조의 문장만 고려한다는 한계가 있다. 분석성에 대한 칸트의 두 번째 정의는 다음과 같다.

P는 분석적이다 $\iff$ P의 부정이 모순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정의는 모순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만약 모순을 “분석적으로 거짓인 명제”로 정의한다면 이것은 순환 정의에 불과하다.

1.2. 프레게의 분석성 정의

분석성에 대한 프레게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P는 분석적이다 $\iff$ P는 논리 법칙이거나, 정의와 논리 법칙만으로부터 도출 가능하다

여기서 논리 법칙이란 논리 연결사를 제외한 문장 성분들을 어떻게 해석하든지 참인 문장을 말한다. 예를 들어 $(φ → ψ) → (¬ψ → ¬φ)$는 $φ$와 $ψ$를 어떻게 해석하든지 참이므로 논리 법칙이다. 이에 따라 “모든 총각은 결혼하지 않았다”는 다음과 같이 “총각”의 정의와 논리 법칙만으로 도출 가능하므로 분석적이다.

  • 총각(x) := ¬결혼(x) ∧ 남자(x) (총각의 정의)
  • ∀x [ ¬결혼(x) ∧ 남자(x) → ¬결혼(x) ] (논리 법칙)
  • ∴ ∀x [ 총각(x) → ¬결혼(x) ] (1과 2로부터 유도)

1.3. 동의성에 대한 콰인의 공격

그러나 콰인은 어떤 단어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즉, “a와 b는 동의어이다”가 성립할 조건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콰인은 이 질문에 대한 가능한 답을 몇 가지 검토한다. 첫 번째 시도는 다음과 같다.

(i) a와 b는 동의어이다 $\iff$ a와 b가 사전에 동의어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위 시도는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사전은 이미 알려진 동의어의 기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전 작성자들이 어떤 기준으로 두 단어를 동의어로 등재하냐이다. 두 번째 시도는 다음과 같다.

(ii) a와 b는 동의어이다 $\iff$ 임의의 술어 P에 대해 P(a)와 P(b)의 진릿값이 같다.

그러나 위 시도 또한 부적절하다. a = “총각”, b = “결혼하지 않는 남성”, P(x): “x는 두 글자이다”일 때 a와 b는 동의어지만 P(a)는 참이고 P(b)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이에 콰인은 자비의 원칙에 따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지적 의미cognitive meaning를 도입한다. 인지적 의미란 단어의 길이나 시적 분위기, 화용론적 특징 등과 관련하지 않고 오직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나 개념에 관련하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ii)를 수정해야 한다.

(iii) a와 b는 동의어이다 $\iff$ 인지적 의미에만 관련하는 임의의 술어 P에 대해 P(a)와 P(b)의 진릿값이 같다.

그러나 위 시도 또한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임의의 술어”의 외연이 언어에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심장을 가진 생물을 cordate, 신장을 가진 생물을 renate라고 하자. 지금까지 보고된 생물종은 모두 심장과 신장을 둘 다 가지거나 둘 다 결여한다. 따라서 L₁이 HasHeart(x)라는 술어만 포함하는 언어라면 HasHeart(Cordate)와 HasHeart(Renate)는 둘 다 참이므로, cordate와 renate는 동의어이다. 반면 L₂가 NecessarilyHasHeart(x)라는 술어를 포함하는 언어라면 NecessarilyHasHeart(cordate)는 참이지만 NecessarilyHasHeart(renate)는 거짓이므로 둘은 동의어가 아니다.

따라서 (iii)는 동의성을 언어에 의존적인 개념으로 만든다. (iii)가 유효한 정의이기 위해서는 “…가 필연적이다”와 같이 양상 표현하는 언어를 배경 언어로 설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iii)를 수정해야 한다.

(iv) a와 b는 동의어이다 $\iff$ 양상 표현이 포함된 언어 L에 속하고 인지적 의미에만 관련하는 임의의 술어 P에 대해 P(a)와 P(b)의 진릿값이 같다.

그러나 콰인에 따르면 위 시도 또한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이제는 양상성의 의미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a는 필연적으로 b이다”가 성립할 조건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만약 필연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면 순환 논증에 봉착한다.

a는 필연적으로 b이다 $\iff$ 모든 a가 b라는 것은 분석적으로 참이다.

그러므로 분석성에 대한 프레게의 정의는 동의성이나 필연성에 대한 정의가 제시되지 않는 한 순환적이다.

2. 콰인의 공격에 대한 고찰

콰인의 공격은 동의성을 겨냥하고 있지만, 그 함의는 훨씬 광대하다.

2.1. 논리 회의주의

첫째, 콰인의 공격은 논리 법칙에 대한 본인의 정의 또한 공격한다. 일례로 콰인에 따르면 $P(x) ∧ Q(x) → P(x)$ 가 논리 법칙인 이유는 $P, Q, x$에 무엇을 대입하든 참인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준이 정합적이기 위해서는 x에 대입하는 단어가 동의적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P(x): “x는 둥글다”, Q(x): “x는 딱딱하다”, 그리고 x = “배”일 때 P(x) ∧ Q(x) → P(x)는 “둥글고 딱딱한 배는 둥근 배이다”가 된다. 그러나 이 문장이 참이기 위해서는 주어부의 “배”와 술어부의 “배”가 동의어야 한다A round and hard pear is a round pear. 만약 주어부의 “배”가 과일인데, 술어부의 “배”가 선박이라면 거짓인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A round and hard pear is a round ship. 따라서 논리 법칙에 대한 콰인의 정의 또한 동의성에 의존한다.

2.2. 의미 회의주의

둘째, 콰인의 공격은 언어 간 번역을 허구적인 것으로 만든다. 누군가 “That apple is red”라는 문장의 번역을 묻는다면 우리는 “저 사과는 빨갛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번역인 이유는, ‘that’, ‘apple, ‘red’, ‘is’는 각각 ‘저’, ‘사과’, ‘빨갛다’, ‘이다’와 동의적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다음이 성립하는 것으로 보인다.

$φ$의 번역은 $ψ$이다 $\iff$ $φ$는 $ψ$와 동의적이다.

그런데 우변의 정의가 모호하다면 좌변의 정의 또한 모호한 것이 된다. 결론적으로 번역의 기준이 동의성에 의존하는 한 콰인의 공격은 번역, 나아가 의미 자체가 허구적인 개념이라는 의미 회의주의를 시사한다. (번역에 대한 회의주의가 의미에 대한 회의주의로 이어지는 논증에 관해서는 곧 올라올 다른 글을 참고하라)

3. 콰인의 분석·종합 공격에 대한 반론

콰인의 공격은 다음의 구조를 가진다.

개념 C의 정의가 순환적이라면 C는 정당하지 않다unintelligible.

이것을 콰인의 소크라테스적 조건 이라고 부르자. 콰인의 소크라테스적 조건은 지나치게 강한 요구 조건이라는 반박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빨강”이나 “파랑”을 순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색깔 개념들이 정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또한 데이빗슨 등의 논의는 언어가 학습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정의 용어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언어 L의 모든 개념이 소크라테스적 조건은 만족할 경우 L은 학습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콰인은 모든 개념이 소크라테스적 조건을 만족할 필요는 없지만 특정 개념들은 반드시 소크라테스적 조건을 만족해야 하며, 분석성이 다름아닌 그러한 개념 중 하나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일례로 다음의 문장들을 보자.

모든 초록색인 것은 외연을 가진다.

위 문장이 분석적인지의 여부는 모호하다. 콰인은 이 모호성이 “초록”이나 “외연”의 의미로부터 비롯되는 문제가 아닌, “분석적”의 의미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하며, 이것은 여타 개념과 달리 분석성은 엄밀한 정의 없이는 정당화할 수 없는 개념임을 방증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그라이스와 스트로슨은 “모든 초록색인 것은 외연을 가진다”의 분석성 여부가 모호한 이유는 분석성의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초록색인 것”의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초록색 점멸” 또한 “모든 초록색인 것”에 해당하는지가 모호하므로 문장의 분석성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분석성은 거의 모든 사람에 의해 일관적인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소크라테스적 조건이 요청될 정도로 모호한 개념이라고 볼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

4. 콰인의 논리실증주의 비판

4.1.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

논리실증주의에 따르면 모든 참은 분석적이거나 종합적이다. 이 중 분석적 참은 논리적 분석을 통해 검증할 수 있고, 종합적 참은 감각 자료를 통해 검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문장의 의미는 감각 자료의 논리적 복합체logical compound of sense data라는 환원주의적 논제가 얻어진다. 예를 들어 “고양이는 책상 위에 있거나 상자 안에 있다”의 의미는 “고양이”, “책상”, “상자”에 대응하는 감각 자료와 “또는”, “있다” 등의 논리적 연결사로 분석된다.

그러나 콰인은 의미론적 환원주의자는 자연 언어의 문장을 감각 자료의 논리적 복합체로 환원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함을 보일 입증 책임burden of proof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콰인은 카르납이 ⟪세계의 논리적 구조⟫에서 감각 자료와 논리적 연결사만 가지고서 자연 언어를 구축하려고 시도한 사례를 언급하지만, 카르납의 프로젝트는 본인 스스로도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콰인은 환원주의의 입증 책임이 해소되지 않는 한 환원주의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4.2. 검증가능성에 대한 비판

논리실증주의에 따르면 문장의 의미는 그것의 검증 가능성이다. 이같은 의미의 검증주의적 이론verificationist theory of meaning 하에서 분석성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P는 분석적이다 $\iff$ P는 검증의 결과가 어떻든지 참이다

그러나 콰인은 논리실증주의의 분석성 정의 또한 문제적이라고 주장한다. 콰인에 따르면 개별 명제를 독립적으로 떼 놓고서 검증하기란 불가능하므로, 의미의 검증주의적 이론은 개별 문장의 의미를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음의 명제를 보자.

(i) 물은 100°C에서 끓는다

위의 명제를 검증하는 한 가지 방법은 끓는 물에 온도계를 넣는 것이다. 그런데 끓는 물에 온도계를 넣어보니 102°C가 나왔다면 우리는 (i)를 기각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i)를 기각하는 대신 “온도계가 고장났다”, “순수한 물이 아니었다”, “기포 발생이 저해되어 과가열되었다”, “내가 온도계를 잘못 읽었다” 등 수많은 다른 명제를 대신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콰인은 검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언제나 믿음의 망web of beliefs 전체라는 인식론적 전체론epistemological holism을 주장한다. 위의 경우에서 검증되는 것은 “물은 100°C에서 끓는다”는 명제가 아닌, “이것은 순수한 물이고, 온도계는 정상적이고, 과가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물은 100°C에서 끓으며…” 등의 믿음의 망인 것이다.

4.3. 인식론적 전체론의 함의

콰인의 전체론은 모든 명제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극단적이다. 콰인에 따르면 믿음의 망에는 분야 간 뚜렷한 경계가 없다. 따라서 수학이라고 해서 과학이나 철학에 비해 독보적인 인식론적 지위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콰인의 자연주의로 이어진다.

콰인에 따르면 명제 $φ$가 확실certain하다는 것은, $φ$가 어떤 경우에서도 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φ$가 믿음의 망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의미이다. 믿음의 망에 반하는 검증 결과가 제시되었을 때 우리는 믿음의 망을 수정해야 하는데, 추후에 믿음의 망에 반하는 결과들이 나올 가능성이 최소화되도록 망을 수정하는 것이 가장 실용적이다. 실용성의 원칙에 따라 핵심부에 있는 믿음을 폐기·수정하는 것보다 주변부에 있는 믿음을 폐기·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핵심부에 있는 믿음은 거의 영구적으로 존속하게 되어 확실성의 지위를 획득한다. 그러나 만약 핵심부에 있는 믿음 — 이를테면 논리학의 법칙들 — 을 폐기하는 것이 더욱 실용적인 상황이 닥친다면 콰인은 논리학을 폐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4.4. 인식론적 전체론에 대한 반론

라이트Crispin Wright는 콰인의 전체론이 무한 퇴행에 빠지기 때문에 비정합적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다음의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 믿음의 망을 고려하자.

  •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이론 $T$
  • 논리 체계 $\mathcal{S}$

추가로 $p → q$가 $T$와 $\mathcal{S}$로부터 도출 가능한 법칙에 해당한다고 가정하자. 예를 들어 $T$가 뉴턴 역학이고 $\mathcal{S}$가 1차 논리라면, $p$는 “광자는 질량이 없다”이고 $q$는 “광자는 중력의 작용을 받지 않는다”일 수 있다.

이제 $T$와 $\mathcal{S}$에 반하여, $p$와 $¬q$를 시사하는 관찰 결과 — 이를테면 중력 렌즈 효과 — 가 나타났다고 가정하자. 콰인의 전체론을 따르면 다음 네 가지 명제는 모두 기각될 수 있는 명제의 후보이다.

  1. $p ∧ ¬q$를 기각 (중력 렌즈 효과는 잘못 관찰되었다)
  2. $T$를 기각 (뉴턴 역학은 틀렸다)
  3. $\mathcal{S}$를 기각 (1차 논리는 틀렸다)
  4. $T \vdash_\mathcal{S} p → q$를 기각 (뉴턴 역학과 1차 논리로부터 $p → q$를 도출하는 것은 틀렸다)

위 4개의 후보 중 무엇을 기각할지는 실용성의 기준으로 정해진다. 일례로 실용적 고려가 다음을 시사한다고 하자.

  1. (4)를 기각하는 것이 가장 실용적이다.

그러나 라이트는 (5) 또한 믿음의 망에 속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4)를 기각하는 대신, (5)를 기각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반대로 (5)를 기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의 믿음이 추가로 요청된다.

  1. (5)를 기각하지 않는 것이 실용적이다.

그런데 (6)을 기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6)을 기각하지 않는 것이라는 믿음이 추가로 요청되고, 이것은 무한 퇴행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라이트는 인식론이 무한 퇴행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4)와 같은 일부 믿음을 실용주의적 고려의 범위 밖에 위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고문헌

Quine, Willard V. O. (1951). Two Dogmas of Empiricism. Philosophical Review 60 (1):20–43.

Miller, Alexander (1998). Philosophy of Language. New York: Routle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