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원리로 증명하는 영원회귀

철학
확률론

지난 글에서 푸앵카레 재귀정리를 이용해 영원회귀의 제한된 형태를 증명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필자 본인도 그 증명에 사용된 가정들의 설득력은 낮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제 저녁밥을 먹다가, 일종의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를 통해 이 설득력을 유의미하게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지난 글을 읽지 않았더라도 이 글을 이해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가정

막스 테그마크의 구분법을 따라 4단계 다중우주론Level IV multiverse이 성립한다고 가정하자. 즉, 우리가 논리적·수학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수학적 구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우주이다. 4단계 다중우주론을 지지하는 유력한 근거로는 미세조정 문제가 있는데(이 또한 인류원리에 호소한다), 이 글에서는 4단계 다중우주론을 받아들일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는 점을 일단 인정하기로 하자.

또한 영원회귀하는 우주는 논리적·수학적으로 무모순이며, 그러한 우주 중에는 관측 가능한 영역 내에서 우리 우주와 동일한 순간을 포함하는 우주 또한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이 가정만큼은 지난 글에 의해 충분히 논증되었다고 생각한다.

두 가정은 함께 다음을 시사한다.

어떤 영원회귀적 우주가 존재하여, 그 우주에는 관측 가능한 영역 내에서 나와 같은 삶을 사는 “쌍둥이-나”가 있다.

논증

이제 다음과 같이 논증하자. 우리의 현실 우주를 $@$라고 하고, 관측 가능한 영역 내에서 $@$과 동일한 두 우주 $U_1$과 $U_2$가 있다고 하자. $U_1$은 비회귀적 우주이고, $U_2$는 영원회귀적 우주이다. $@ = U_1$이거나 $@ = U_2$라는 사실이 주어졌다면, 두 가능성 중 어느 쪽의 확률이 더 높을까?

인류원리에 따르면 답은 이렇다. 나는 $U_1$에 속해 있을 확률보다 $U_2$에 속해 있을 확률이 무한히 더 높다. $U_1$에서는 “나”의 사례가 한 번만 실현되지만, $U_2$에서는 “나”의 사례가 무한히 많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P(@ = U_1 \mid @ \in \{U_1, U_2\}) = 0, \qquad P(@ = U_2 \mid @ \in \{U_1, U_2\}) = 1\]

이다.

이제 독자는 필자가 어떤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고자 하는지 짐작했을 것이다. $U_1$과 $U_2$을 비롯해 관측 가능한 영역 내에서 $@$과 충분히 유사한 모든 우주들의 모임 $\mathcal{U}$를 고려한다면, $\mathcal{U}$는 비회귀적 유형과 영원회귀적 유형으로 양분할 수 있다. 필자의 주장은, 위의 인류원리 논증에 따르면 $@$은 영원회귀적 유형에 속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위의 논증 스케치는 우리의 우주가 영원회귀적 우주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물론 이 논증을 자세히 다듬으려면 가능세계 위의 확률분포와 측도 문제를 자세히 따져야 하겠지만, 이 부분은 독자에게 연습문제로 남긴다.

관련 글

Related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