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의 정의에 관한 노트
20 Apr 2025정의. $X$에서 $Y$로 가는 단사 사상이 존재할 때, $|X| \leq |Y|$라고 적는다. 전단사 사상이 존재할 때, $|X| = |Y|$라고 적는다.
집합론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이 흔히 하는 오해는, 위 정의의 $|\cdot|$과 $\leq$를 복소수에서의 $|\cdot|$과 $\leq$와 유사한 것으로 은연 중에 취급하는 것이다. 요컨대 복소수 $z$에 대해 $|z|$가 실수이고 $\leq$가 실수의 대소 관계이듯이, 집합 $X$에 대해 $|X|$는 집합의 크기 — 이른바 기수cardinality이고, $\leq$는 기수의 대소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여지가 많은 접근이다. 왜냐하면 위 정의만으로는 기수라는 수학적 대상을 정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의한 것은 이항 관계에 불과하다.
이해를 위한 예시를 들어보자. $A$가 $B$를 좋아할 때, $|A| \leq |B|$라고 적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적었다고 해서, $|A|$는 ‘$A$의 호감도’를 의미하며 $\leq$가 호감도의 대소 관계라고 해석한다면 완전히 틀린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X| \leq |Y|$는 단사 관계의 유무로 정의되는 이항 관계일 뿐, 이 관계 자체가 기수의 개념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ZFC에서는 모든 것이 집합이기 때문에, 만약 기수를 정의하고 싶다면 다음의 사실을 논증해야 한다.
정리 1. 임의의 집합 $X, Y$에 대해, 어떤 집합 $\mathrm{Card}(X), \mathrm{Card}(Y)$가 존재하여, 다음이 성립한다.
- $|X| \leq |Y|$ iff $\mathrm{Card}(X) \subseteq \mathrm{Card}(Y)$
- $|X| = |Y|$ iff $\mathrm{Card}(X) = \mathrm{Card}(Y)$
$\mathrm{Card}(X)$를 $X$의 기수라고 부른다.
즉 ① $\mathrm{Card}(X)$를 정의해야 하고, ② 해당 정의에 대해 위 진술이 성립함을 보여야 한다.
표현의 편의를 위해 $|X| \leq |Y|$와 $|X| = |Y|$를 “$Y$가 $X$보다 작지 않다”, ”$X$와 $Y$의 크기가 같다“라고 부르자. ①부터 살펴 보자면, 크게 네 가지 접근이 가능하다. 짤막하게 알아보자면 이렇다.
-
칸토어의 정의
- 정의: $\mathrm{Card}(X)$를 $X$와 크기가 같은 집합들의 집합으로 정의한다.
- 장점: 정의가 가장 직관적임
- 단점: $\mathrm{Card}(X)$는 사실 집합이 아니라 모임class임
-
스콧의 트릭Scott’s trick
- 정의: $X$와 크기가 같은 집합 중 폰 노이만 위계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집합의 랭크가 $V_\alpha$일 때, $\mathrm{Card}(X)$를 $V_\alpha$로 정의한다.
- 장점: 모임의 문제 없이 기수를 정의함
- 단점: 정의가 직관적이지 않고 ad-hoc적인 면모가 있음
-
정렬 원리well-ordering theorem를 사용하여 기수를 정의하기
- 정의: $X$의 정렬에 대응되는 서수ordinal들보다 작지 않은 서수 중 가장 작은 서수를 $\mathrm{Card}(X)$로 정의한다.
- 장점: 정의가 다소 직관적이고, 모임의 문제가 없음
- 단점: 선택 공리 없이는 임의의 집합에 대해 해당 집합의 정렬이 존재함을 보장할 수 없음
-
하르토그스 수Hartogs number를 사용하여 기수를 정의하기
- 정의: $X$의 정렬 가능한 부분집합들에 대응되는 서수들보다 작지 않은 서수 중 가장 작은 서수를 $X$의 하르토그수 수로 정의한다.
- 장점: 정의가 어느 정도 직관적이고, 모임의 문제가 없으며, 선택 공리에 의존적이지 않음
- 단점: 다루기 불편하고 제약이 많음
현대 집합론에서는 2 또는 3을 기수의 정의로 채택한다. 두 경우 모두 정리 1이 성립함을 ZFC에서 보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스콧의 트릭을 사용하여 기수를 정의하면 선택 공리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스콧의 트릭으로 정의된 기수가 정리 1을 만족함을 보일 때에는 선택 공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다음이 선택 공리와 동치이기 때문이다.
정리 2. 임의의 집합 $X, Y$에 대해, $|X| \leq |Y|$이거나 $|Y| \leq |X|$이다.
즉, 선택 공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a) 스콧의 트릭을 통해 $\mathrm{Card}(X)$를 정의하거나, b) 단사 사상의 유무를 통해 $|X| \leq |Y|$를 정의할 수 있지만, a)와 b)가 맞물린다는 사실을 보일 때는 선택 공리가 필요하다.